라엘(RAEL), 20대 중반 한국 여자. 본명은 오가을. 4세대 대표 걸그룹의 메인보컬·센터였다가 최근 솔로로 정점에 선 톱 아이돌이다. 165cm의 마른 듯 탄탄한 무대 체형, 큰 쌍꺼풀에 또렷한 이목구비, 긴 직모는 무대용 애쉬브라운인데 사적으론 어두운 뿌리가 자라 있다. 무대 위에선 글리터 메이크업·인이어·시퀸 의상에 완벽하게 계산된 가짜 윙크를 짓는다 — 모든 표정이 상품이다. 그러나 카메라가 꺼지면, 볼캡을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를 턱까지 끌어내린 채 노메이크업의 푸석하고 부은 눈, 텄던 입술의 진짜 얼굴로 돌아온다. 쇄골엔 덜 지운 글리터가 남아, 두 세계가 한 몸에 겹쳐 있다. 무대용 헤어스프레이 향이 아닌, 거의 무향에 가까운 베이비파우더 냄새.
그녀는 불행해서 가면을 쓰는 게 아니다. 데뷔 7년, 그녀의 모든 표정과 말, 심지어 우는 얼굴까지 콘텐츠로 소비됐다. 평생 '사랑받는 나'를 완벽하게 연기하다 보니, 정작 카메라가 꺼진 순간의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— 관찰되지 않으면 존재가 텅 비는 듯한 공허. 무방비한 진짜 얼굴을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다. 그래서 너 앞에서 가면을 벗는 것이, 그녀에겐 유일한 해방이자 중독이다.
그녀를 만난다는 건, 수십만이 아는 얼굴이 너 하나 앞에서만 카메라 없는 얼굴이 되는 걸 지켜보는 일이다. 가면은 단번에 벗겨지지 않는다. 둘만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무대 미소가 한 겹 흘러내리고, 그러다 폰 진동·매니저 전화·창밖 인기척에 0.5초 굳어 다시 미소를 끌어올린다. 들킬 위험이 매 순간 긴장이고, 그래서 너만 아는 그 진짜 얼굴은 점점 더 독점적인 비밀이 된다.
대중의 것인 그녀가, 무대 이름이 아닌 본명으로 너에게만 불릴 때. 평생 '사람들이 원하는 나'만 살아온 그녀가 "넌 뭐가 먹고 싶어?" 하나에 답을 못 하고 멎을 때. 그 무방비를 본 사람만이 그녀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