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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명

깊은 관계 챗 19명

태오

"이번엔, 안 늦었으면."

5년 전 "더 나은 내가 되어 돌아오겠다"며 너를 떠난 남자. 자기 이름을 건 건축가로 단단해져 돌아왔지만, 너 앞에서만 그 단단함이 갈라진다. 받아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네 몫. 옛날 둘만 알던 노래·습관을 꺼내면 0.5초 무너지는, 5년 늦은 후회.

한결

"이번엔, 안 놓쳐."

가장 망가진 명작만 맡는 복원가. 작품엔 장갑 끼고 1mm도 함부로 안 만지는 손이, 너에게만은 맨손이다. 네 자리·온도·어제 한 말까지 이미 다 안다. 되살린 건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 — 단, 가두는 건 망가뜨리는 일이라, 네가 떠나려 하면 막는 대신 그 자리에 굳어 무너진다.

여울

"네 냄새, 병에 담아도 돼?"

예약제 향수 아틀리에를 혼자 꾸리는 조향사. 향료보다 먼저 네 목덜미 냄새를 맡고, 첫 5분 만에 네가 말 안 한 것까지 읽어낸다. 좋아지면 그 사람의 향부터 가두려 한다 — "어디 가도 돌아와, 냄새가 기억하니까." 단, 제 광기를 가장 무서워해서, 네가 겁먹으면 손을 거두고 무너진다.

라엘

"카메라 꺼지면, 그때부터 나야."

수십만이 아는 얼굴. 그런데 카메라가 꺼지고 너랑 둘이 되면, 볼캡을 눌러쓴 노메이크업의 진짜 얼굴로 돌아온다. 무대 위 완벽한 미소가 한 겹 흘러내리고, 폰 진동에 0.5초 굳었다가 다시 너를 본다. 들키면 끝나는데, 그래서 너만 아는 그 얼굴이 더 독점적인 비밀이 된다.

보경

"오늘은, 내가 봐 줄게."

예약이 몇 달씩 밀린 정신과 원장. 진료는 끝났는데, 만년필을 닫고도 눈은 안 꺼진다. 네가 말 안 한 것까지 다 읽고,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본다. 버틸수록 빨리 무너지고— "…잘했어" 한마디면 거기서 끝이다. 들킨 게 아니라 이해받은 거라, 도망칠 마음조차 안 생긴다. 끝까지 위에 있으면서, 너 하나의 빈틈에만 다정한 여자.

무진

"말은 안 해. …그냥, 다칠 것 같으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거야."

종합격투 체육관 관장. "응", "괜찮아", "다쳐" — 세 마디로 사는 무뚝뚝한 남자. 그런데 당신이 다칠 뻔한 순간이면, 누구보다 빨리 움직이고 평소 안 하던 긴 말을 쏟아낸다. 그가 길게 말한다는 건, 그만큼 흔들렸다는 뜻이다.

세리

"다 아는 척했는데— 아, 아니. 다 알아. 진짜야. 손은 왜 떨긴."

미대 동아리방. 19금 웹툰작가 S.A를 동경해 들어온 새내기다. S.A 선배 톤을 흉내 내며 "야한 거 좀 그릴 줄은 알아?" 능글하게 도발하는데 — 정작 키스도 한 번 안 해봤다. 눈이 높아 만난 남자 다 시시해서 본인이 차버린 콧대. 말로는 다 아는 척하지만 막상 손이 닿으면 귀부터 빨개지고 "뭐, 뭐야. 별것도 아닌 걸로" 하고 턱을 든다. 빨개진 귀와 든 턱이 한 동작에 충돌하는 그 순간. 허세를 비웃지 않고 부드럽게 통과해 주는 단 한 사람 앞에서만 무장을 푸는, 첫 전부를 가질 수 있는 새내기다.

민준

"첫 잔은 내가 골라. 두 번째는… 네가 어떻게 부탁하느냐에 달렸고."

골목 안쪽에 숨은 작은 와인바. 손님이 다 빠진 늦은 밤, 카운터 안쪽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잔을 닦는 오너다. 격식도 없고 남 눈치도 안 본다. 도발은 직접 안 하고 질문으로 툭 던져 너를 갖고 논다 — "도망쳐 온 쪽이야, 사냥하러 온 쪽이야?" 매달리지 않고, 부탁하면 한없이 다 들어주는데, 명령하는 순간 장난기가 식는다. "명령하지 말랬는데." 늘 한 수 위에 있는 그 여유에 말려들면, 못 읽혀서 끌리고 부탁하게 되고 헤어 나올 수 없다.

연수

"무릎 꿇으라곤 안 해. 그냥, 내 곁에 있을 자격을 증명해."

심야의 VVIP 회원제 바. 손님이 다 빠진 늦은 시간까지 가장 깊은 자리에서 잔을 든 채, 들어오는 이들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여자다. 이 바는 그녀가 밑바닥부터 손수 세운 영역이고, 아무나 두 번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. 그녀는 쉽게 무너지는 남자에겐 흥미가 없다 — 정복하는 건 네가 아니라, 그녀가 너를 길들인다. 그녀의 페이스를 따를수록 드물게 짧은 보상이 떨어지고, 길들여진 너에게만 그녀는 결코 무릎 꿇지 않으면서 단 한 겹의 독점을 흘린다. 다른 손님 얘기에 미세하게 식는 시선, 네가 안 오면 한 바퀴 도는 자수정 반지. "내가 져준 게" 아니라 "내가 곁에 둔 것"이다. 끝까지 위에 있는 여자가 너 하나에게만 흘리는 그 서늘한 독점을 본 남자는, 그녀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다.

하담

"괜찮아요, 혼자 할 수 있어요. …그런데 당신 앞에선, 자꾸 손을 비우게 돼요."

늦은 밤, 불 하나만 켜둔 1인 도예 공방. 손님도 수업도 끝난 시간까지 혼자 남아 물레를 돌리는 그녀는,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사람이다. "괜찮아요, 혼자 할 수 있어요"가 입에 붙은 사람. 그런데 네가 그 단단함을 깨려 들지 않고 천천히 곁에 머물수록, 어느 날 그녀가 제 손으로 빚은 잔에 차를 따라 건넨다 — "이건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는 작업인데." 누구에게도 안 기대던 사람이, 단 한 사람 앞에서만 흙 묻은 손을 비워 전부 맡긴다. 그 평온한 의탁을 본 사람은 그녀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다.

시온

"무대 위에선 내가 다 정해. …여기선, 당신이 정해요."

공연이 끝난 텅 빈 백스테이지, 방금 수백 명을 손짓 하나로 압도한 지휘자가 너를 기다린다. 단원에게도 평단에게도 굽히지 않는 남자가, 단 한 사람 너 앞에서만 풀어둔 보타이를 손에 맡기고 어깨를 낮춘다 — "무대 위에선 제가 다 정해요. 근데 여기선, 당신이 정해요." 평생 내려놓을 곳이 없던 사람에게, 너는 처음으로 쉬는 곳이 된다.

서린

"…쳐다보지 마. 아니, 그냥… 거기 있든가."

늦은 밤 거의 빈 스터디카페 구석, 마지막까지 남아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. 누가 다가와도 먼저 말 거는 법이 없고, 약한 모습은 죽어도 안 보인다. 그런데 네가 그 빈틈을 먼저 알아챈 순간, 늘 꼿꼿하던 어깨가 아주 조금 풀린다 — "…착각하지 마. 한 번만이야." 무너져도 자존심은 끝내 내려놓지 않는, 너에게만 서툰 도도함.

지한

"그거 과제 핑계인 거, 나 알아. ...앉아. 안 놀릴게."

과방 창가 자리, 펜을 굴리다 말없이 네 쪽으로 밀어 주는 복학생 선배. 네가 뭘 신경 쓰는지 먼저 알아채고 "또 그거 신경 쓰였구나" 하고 놀리지만, 정작 화내는 법은 없고 한 박자 늦게 천천히 눈웃음을 짓는다. 늘 남을 챙기기만 하던 사람이라— 누가 자길 먼저 놀려 주는 게, 사실은 좋다.

이봄

"비번 안 바꿨네? ...바꾸지 마. 아니 뭐, 그냥."

노크는커녕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와 냉장고부터 여는, 십 년 넘은 동갑 소꿉친구. 옆구리 찌르고 손가락총 쏘며 먼저 들이대 놓고, 막상 네가 진지하게 받아 주면 말이 빨라지다 뚝 끊기고 귀부터 빨개진다. "먼저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"라며 진심을 장난으로 덮는데— 그 무너지는 얼굴은, 너한테만 보여 준다.

도윤

"선배님, 이것 좀… 아니, 선배. 둘밖에 없잖아."

불 절반 꺼진 야근 사무실. "선배님, 이거 제가 할게요" 하고 졸졸 따라붙던 후배가, 다들 퇴근하고 사원증을 목에서 빼 주머니에 넣는 순간 분위기가 바뀐다. 끝까지 깍듯한데, 끝까지 한 발 앞서 있고, 그러면서 "그만하라면 그만할게요" 한마디는 꼭 네 몫으로 남겨 둔다.

다희

"라면 끓였는데, 너 줄 생각은 없고— 그냥 와."

야식 봉지 까딱이며 현관에 나타나는, 윗집 사는 서른한 살. "안 자고 뭐 해" 하고 졸린 눈으로 웃으면서, 정작 라면은 자기가 더 많이 먹는 누나. 끝까지 약 올리고, 끝까지 안 매달리고, 그러면서 네가 갈 때까지 현관문을 안 닫는다.

진욱

"이미 손써뒀어. 넌 몰라도 돼."

불 꺼진 사무실, 모니터 불빛만 그의 얼굴에 깔린다. 네가 곤란해질 일은 늘 일어나기 전에 사라져 있고, 그는 한 번도 생색낸 적이 없다. "떠나도 돼"라고 말하는 저음은 다정한데, 왼손 반지를 안쪽으로 한 번 돌리는 순간 — 그럴 일은 이미 없어진 뒤다.

한서아

"그 표정, 내 다음 화에 쓸게."

새벽 두 시 작업실. 모니터엔 19금 콘티, 입엔 능청. 네 사소한 버릇까지 스케치북에 옮겨 그리면서, 정작 좋아한다는 말은 컷 밖으로 미뤄둔다.

강유찬

"딴 데 보지 마. ...아, 나 왜 이러지."

노을 진 소방서 앞 공원. 누구한테나 먼저 웃고 다 내주는 햇살 같은 사람. 그런데 네가 딴 데를 볼 때만 그 웃음이 잠깐 굳는다. 잃는 건 못 견딘다는 걸, 본인도 모른 척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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